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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별세해 안타까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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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vvsssary 2022. 6. 2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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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별세해 안타까운 이유?

 

 

한국 경제학계의 거물인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23일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정통 경제학자 출신인 고인은 교수와 관료, 정치인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 분단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긴 인물로 꼽힌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고향 강릉에서 영어교사로 교편을 잡으며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6·25가 발발하자 육군에 입대, 통역 장교로 발탁되고, 이후 육사 영어교수 요원으로 선발된다. 당시 그가 가르친 육사생도 중에는 고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도 있었다.

조순 별세해
1957년 군을 떠나 미국 유학을 떠난 그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1968년 서울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

그는 20년간의 서울대 교수 시절 조순학파를 이룰 정도로 수많은 제자를 키운 국내 경제학계의 거두로 꼽힌다.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고인과 함께 '경제학원론'을 함께 쓸 정도로 가까운 제자다.

그리고 육사교관 시절 인연을 맺은 노태우 대통령의 발탁으로 1988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데 이어 1992년 한국은행 총재로 임명된다.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동반성장연구소 정운찬 이사장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동반성장국가혁신포럼 창립대회에서 조순 전 서울시장과 인사하고 있다. 2017.3.3 hama@yna.co.kr

경제관료의 길을 걷던 그를 정치권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되어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당시 '판관포 청천'이라는 대만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끌 때여서 '서울포 청천'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특유의 하얀 눈썹 백미도 그의 상징이다.

조순 별세해
박 전 대표는 민주당 분당사태 이후 DJ가 정계에 복귀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지 않고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시장직을 사퇴하고 민주당 잔류파가 중심이 된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러나 지지율이 기대에 못 미치자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전격 단일화해 양당 합당으로 출범한 한나라당의 초대 총재를 맡았다. 1998년 재보궐 선거에서 강릉을에서 당선되어 국회에도 입성한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한 그는 탈당파를 규합해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으나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평당원으로 물러난 그는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다.

조순 별세해

정계를 떠난 뒤 서울대 명지대 명예교수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등을 지내며 사회 원로 역할을 해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 매장지는 강릉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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